“조선 최초 신도시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200년전 지혜 살려 신도시 성공을 [데스크칼럼]
수원문화재단, 추석 연휴 전통문화 프로그램 다채롭게 운영
정조의 효심이 깃든 수원 화성행궁과 봉수당(奉壽堂)의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뜻으로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고향처럼 여긴다는 의이이다. 1795년에는 정조대왕이 참석한 가운데 신풍루 앞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죽을 끓여 먹이는 진홀 행사가 있었다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발길을 돌린 덕분에 공연과 퓨전 음악으로 힐링이되었던 시간들이었다 성곽을 걸으면서 물배를 채워 출출해져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1시를 넘어서고…
꼭꼭꼭 화성행궁 가면 그 옆에 있는 정조대왕도 꼭 만나고 오세요. 화성행궁 2차 복원시 화령전 담벼락도 완성이 되었습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통과하여 정전 운한각에 올라 보겠습니다. 군복입은 정조대왕의 어진이 야경으로 보니 더 운치 있어 보입니다 . 운한각, 복도각, 이한청은 예전 그대로의 건축물로 문화재 보물로도 지정이 되어 있어요. 관람을 마치고…
조선 정조때 화성프로젝트 일환으로 조성된 저수지로 지금의 모습은 공원조성의 목적을 가지고 일부 매립한 모습이라고 한다. 그럼 가볼까~ 수원,화성,안산,의왕은 거의 여기서… 그리고 운동장 옆으로가면 정조대왕능행차거리 가있는데… 양옆으로 소나무가 조성되어있고 가운데는 걸으면 조금 민망할수있는곳! 그냥 이런곳도 있구나 하고 그냥 바라본다. 노송길 에서…
‘대승원 가는 길일까’ 하고 올라가 봤는데 커다란 불상 대신 정조 대왕님을 보게 되었답니다. 한 단체 분들이 정상을 향해 열심히 올라가고 있었는데요. 잠깐이지만 쉼 없이 오르는 길… 그렇게 가다 보니 정조 대왕 동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그곳을 구경해 보기로 했죠. 저~~~기 보이는 대왕님! 크기는 어땠냐고요? 불상보다는 작가…
정조가 원행 당시 건넌 다리, 대황교(大皇橋) / 화성저널 기고 사도세자(思悼世子, 추존 장조)의 무덤으로 잘 알려진 융릉(隆陵)으로 가다 보면 원대황교(元大皇橋)라는 이름의 돌로… 대황교는 정조 능행길의 주요 장소로, <일성록>을 보면 을묘년(1795) 윤 2월 12일에 혜경궁 홍씨와 함께 현륭원을 전배하러 갈 당시 ‘팔달문(八達門) – 상유천점(上柳川店) – 하유천(下柳川)…
용주사는 조선 정조 때에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하여 정조의 명으로 증축된 절입니다 (신라시대 창건) 입구에 보이는 홍살문이 낮설었는데 사도세자를 기린 곳이라 홍살문이 세워져 있던 거였어요~ 용주사에서만 볼 수 있답니다^^ 홍살문 왕족의 무덤인 능,원,묘,궁전,관아 등의 정면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 전설에 따르면 절 건물이 낙성되던 날 밤 용이 입에…
정조효심 독산성과 세마대지 보적사 오산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는 삼국시대에 처음 쌓은 후 조선시대까지 운영되었던 긴 역사를 지닌 오산의 대표… 정조16년에 70일간 새로 짓는 것과 비슷하게 큰 규모로 공사를 했고, 20년(1796) 수원 화성이 완공된 이후 협수체제(서로 협력하여 지키는 구조)를 구축하였다고 합니다. 산꼭대기에는 세마대가…
그것은 바로 조선 정조의 지극했던 효성에서 비롯됩니다. 2023 정조효문화제 능 행차 화성 구간 재현 매년 가을이면(10월 초) 정조대왕 능 행차 공동 재현이 이루어지는데요, 서울시, 경기도, 수원시, 화성시가 협력하여 웅장했던 ‘을묘년 화성원행’의 원형을 현대에 화려하게 재현하는 축제입니다. 서울시 창덕궁에서 수원을 지나 화성시 융릉까지 총 59km에 걸쳐 행렬이…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와 함께 있습니다. 수선전도 목판은 조선후기 김정호가 그려서 목각한 서울의 지도 목판입니다. 보물 853호로 지정되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이곳에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를 마주 합니다. 청계천 광교와 삼일교 사이 수변산책길에 높이 2.4m, 길이 186m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가로, 세로 30cm 정사각형 백자도판 4,960장이…
10월 가을축제 2023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일정. 정조대왕은 24년의 재위기간 동안 친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성 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옮긴 후 11년간 총 13번의 원행(園行)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도 대왕 즉위 20년 해인 1795년(을묘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 간 그의 어머니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그중에 수원화성문화제 하이라이트 정조대왕능행차 재현행사로 수원 구간 일부 수원화성 장안문에서 정조대왕을 맞이했습니다. (촬영 일시 : 2023년 10월 9일) 1. 팔달문_보물 제402호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80 능행차로 인해 수원화성 남쪽의 문 팔달문부터 행궁 광장을 중심으로 종로에서 창룡문까지, 종로를 지나 장안문, 수원종합운동장까지 교통통제로…
들어가자마자 정조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너무 잘 그린 거 아님…? 화가 신가요… 정조 대황의 행차를 재현한 모습이 흥미롭다. 수원 화성의 축조방식을 다른 성곽과 비교해 주는 모형이 재미있다. 수원 화성만의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수원 화성을 쌓기 위해 옮겨온 석재의 이동경로도 볼 수 있다. 궁금하긴 했는데 또 이렇게 보니 신기하고. 수원 옛…
화성행궁 시대적 배경 먼저 우리나라 중요한 문화유산 화성행궁에 대해 알아보자 어린시절,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왕권을 시시탐탐 노리는 노론과 소론 세력들을 견제해야했으며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새로운 도시를 건축하고 싶은 계획을 실천한 대왕 2. 제 22대 조선국왕 (正祖) (1752.10.28 ~ 1800.8.18) 영조의 둘째아들인…
정조는 화성 축성이 완료될 무렵 성신사를 설치할 거을 명려아고 축문을 지어 내렸다. 1796년 9월에 건물을 완성하고 ㅅ니주를 봉안한 후, 매년 봄가을로 제사를 올렸다. 성신사 정당은… #대왕기념조형물 #화가 나해석 출생지 수원시는 나해석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그 역사성을 기념하여 여기에 표석을 세웠다고합니다. 문화체육부/ 95 미술이 해 조직위원회…
<융건릉>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와 그의 아내 <효의왕후>가 묻혀 있는 (건릉 健陵)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묻혀있는 (융릉 隆陵)이 있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융릉>은 조선 제22대 임금인 의 아버지 사도세자 (장조, 1735~1762)와 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아내였던 혜경궁 홍씨 (헌경왕후 獻敬王后, 1735~1815)가 함께 묻힌 곳입니다….
조선왕릉은 여기저기 많이 있지만 수원 저희 집에서 가까운 조선왕릉은 사도세자와 정조의 묘가 있는 융건릉 이랍니다. 복잡한 일이 있거나 조용한 분위기에서 산책하고 싶을때 가끔씩 들려보는 곳인데 주말이여도 오전시간에 가면 한산하니 정말 좋답니다^^ 경기도 화성 가볼만한곳 융건릉은 사도세자묘 융릉과 그의 아들 의 능 건릉을 함께 부르는 말입니다. 융건릉…
화성박물관에서 ‘조선의 희비애락, 한눈에 보다’ 전시 와이드 영상으로 재현되는 정조 임금 국장행렬 장면. 창경궁부터 아버지가 있는 건릉까지 가는 장면이 실감 나게 상영된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1795년 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 잔치를 수원화성에서 한 기록이다. 《뎡니의궤》에도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무신진찬의궤》는 1848년(헌종 14년)…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정조대왕 동상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는 찾아가 보았습니다. 화성어차 승차 시 보았던 정조대왕 동상이 있는 곳을 어렴풋 보았지만, 실제 찾아가는 길은 처음이었습니다. 화성행궁 주차장에서 팔달산으로 오르는 우측 목재 계단으로 오릅니다. 쉬엄쉬엄 걸어 올라와 5분 정도 소요된 것 같습니다. 둘레길에 들어서니 성신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조는 왕이면서도 그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흐뭇한 여로였다. 효의 개념이 허물어지고 사라지는 이 시대에서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융건릉으로 입장하면 맨 처음에 효행 역사 문화관이 맞이한다. 당연히 건너뛰지 않고 먼저 의 효심을 살펴보고 능을 돌아보아야 한다. 문화관 관람시간이 있으니 잘 확인하고 가야 한다….
누각이나 성벽을 살펴 보면 성곽 산책을 마친 다음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에 참배하기 위해 수원에 행차한 후 머물었던 화성행궁도 둘러 보았습니다. 행궁은 원래 왕이 행차해 임시로 머물던 공간으로 행차가 마무리되면 철거하던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남아 있는 행궁은 이곳 밖에 없다고 합니다. 가 현륭원을 13차례나 방문했고 또…